평화대행진 참가 못하도록 일찍 퇴근시켜라

 

그러나 사실 모두 시위에 참가했다.

 

6월 시위의 들불이 전국으로 번져 전 국민이 극소수의 독재자를 포위하고 있을 즈음 대한보증보험 노동조합 여성부 차장 김혜숙은 남대문지점 남순찬, 장욱, 신현덕 등과 신입사원 백종갑을 데리고 김국진 위원장을 따라나섰다.

 

“1987년 6월 26일 평화대행진을 한다는 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그날 내가 다니던 회사는 정상퇴근 시간인 6시가 아닌 5시에 퇴근시켰다. 확인되지 않았지만 평화대행진에 참가하지 않도록 일찍 귀가시키는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퇴근을 준비하는데 노동조합 위원장께서 우리 부서에 들렸다. 위원장과 나, 김혜숙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평화대행진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당시 나는 우리부서의 노조 분회장 겸 노조 총무부차장이었고, 김혜숙은 여성부장이었다.

 

우리는 종로5가에 있는 회사를 나와 집결지라는 파고다공원으로 다가가려는데 종로4가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넥타이부대를 만났다. 사실 대치라기보다는 경찰들이 몰려오면 골목으로 흩어졌다가 다른 골목에서 다시 나오는 술래잡기형태였다. 물론 그 술래잡는 것이 최루탄이었지만······ 최루탄이 뻥뻥! 온갖 매캐한 연기로 눈물 콧물 흘리며 이리저리 휩쓸리던 우리는 을지로로 이동하며 시청 쪽으로 올라갔다. 처음에는 돌 던질 생각을 안 했으나 최루탄 속에서 1시간여를 있다 보니 살기 위해서인지 절로 근처 벽돌 부스러기에 손이 갔다.

 

도대체 우리가 왜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가? 나는 왜 계엄군이 되었어야 했을까? 내가 받은 국난극복기장은 무엇일까? 광주항쟁에서 순국한 사람들, 광주에서 전사하여 우리 부대로 공수된 군인들. 나는 왜 여기 나와 있는가?" 마치 영화에서처럼 이 모든 생각들이 머리를 맴돌았다.

 

우리는 시청앞에서 경찰에 눌려 남대문 쪽으로 밀려갔다. 가다 보니 김국진 위원장께서 보이지 않았다. 인파 속에서 헤어진 것이었다. 남대문에는 서울역에서부터 밀려온 넥타이부대가 경찰들과 일진일퇴를 하고 있었다. 김혜숙과 나는 숭례문상가 쪽으로 다가가려 했는데 김혜숙이 최루탄을 직통으로 뒤집어썼다. 우리는 건물 한 모퉁이에서 그의 등을 두드리며 잠시 숨어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길로 나가서 대열에 합류했다. 잠시 후 이번에는 내가 최루탄을 직방으로 뒤집어썼다. 그 괴로움! 눈물과 콧물 그리고 목이 타는 듯한 괴로움, 이 모든 것이 현실 같지 않았다.”

 

어쩌면 너무도 고와 보이던 하얀 최루탄 가루 속에서… 눈물 영롱한 민주화의 향연 속에서… 그때쯤 지랄탄도 바닥이 나고 있었다.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의 각종 학생시위 및 도심시위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이들이 금융사업장으로 대거 취업하였다. 이것 또한 6·10대회 이후 도심시위에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이 자발적으로 대거 참여하는 토대가 되었다.

 

낮이 가장 길어지고 있었던 6월에 서머타임제 실시는 도심시위를 더욱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늘해랑 고물창고 벨로씨엘 날라리천사 ♡♡해피니스♡♡ 그의 이야기 유학일기 바빌론 리더겐 공중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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